기업 인수합병(M&A)은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기존 사업을 고도화 하는 수단이다. 기업 스스로 바닥을 다지지 않고서도 신사업 성장 동력을 빠르게 확보하고 몸집을 손쉽게 불릴 수 있다. 천문학적 금액이 오가는 만큼 리스크도 따른다. 성공한 M&A는 기업 가치를 올리고 재계 순위를 높이는 데 기여하지만, 재무구조 악화의 부메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주요 대기업이 M&A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면서도 신중한 시선으로 접근하는 이유다. [편집자주]
검색엔진으로 출발한 구글이 인공지능(AI), 광고, 콘텐츠, 클라우드, 운영체제(OS), 자율주행 기술 등을 주도하는 글로벌 ‘IT 공룡’으로 성장한 비결은 뭘까. 적극적인 M&A다. 구글은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수백개의 기업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구글은 인수를 통해 덩치를 키운 동시에 경쟁 위협 자체를 제거했다. 2006년 구글 비디오 서비스의 강력한 경쟁자인 유튜브를 16억5000만달러(2조원)에 인수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2009년에는 구글 애드를 위협하던 애드몹을 7억5000만달러에 인수했고, 2013년 구글 지도에 도전하던 신생 내비게이션 기업 웨이즈를 구글 지도 서비스 관련 사업부인 지오(GEO)와 합병했다.
2010년 16라인 반도체 기공식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왼쪽 두 번째)과 이재용 회장(왼쪽 네 번째) / 삼성전자 반면 삼성전자의 M&A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마음 먹고 뛰어든 인수는 잇따라 실패했다.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엔 판단력 부재로 미래 성장 동력을 놓치기도 했다. 구글과 달리 삼성에는 ‘M&A를 잘하는 유전자가 없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삼성전자가 M&A 실패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 것은 1995년 세계 6위 PC업체 미국 AST리서치 인수부터다. 삼성전자는 인수 당시 현지 경영체제 지속을 약속했지만 1년 6개월 만에 삼성전자 경영진을 파견하며 AST리서치 경영진을 물갈이했다. 이에 반발한 AST 리서치 핵심 연구인력이 대거 이탈하고, 경영 상태도 나빠지면서 삼성전자는 10억달러쯤의 막대한 손실만 얻은 채 1999년 AST리서치 경영권을 포기했다.
만약은 없다지만 삼성전자는 반도체 업계에서 ‘슈퍼 을(乙)’로 통하는 세계 1위 반도체 장비업체가 될 수도 있었다. 2021년 발간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30년사’에는 삼성전자가 약 40년 전인 1980년대에 네덜란드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업체인 ASML 인수를 추진했다는 일화가 담겼다.
반도체산업협회 초대 협회장을 지낸 김광호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1982년 필립스가 삼성전자에 ASML(당시 ASM) 인수를 제안했고, 현지 실사를 위해 미국 본사를 찾았다”며 “당시 ASML의 업력이 짧았고, 삼성의 사정이 넉넉지 않아 인수를 포기했다. 안타까움이 남는다”고 회고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6월 14일(현지시간각)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에서 피터 베닝크 ASML CEO와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세계적인 플랫폼 기업이 될 기회도 놓쳤다. 2004년 당시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를 개발한 앤디 루빈으로부터 회사를 인수해달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이후 10년 이상 소프트웨어 주도권은 인수를 수락한 구글로 넘어갔다. 구글은 2005년 초 구글은 안드로이드사를 5000만달러에 인수했고, 루빈을 비롯한 8명의 안드로이드 기술자를 구글 본사로 영입했다.
미국 플래시메모리 업체 ‘샌디스크’와 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 기업 ‘NXP’도 최종 인수로 이어지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 사례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2008년 당시 샌디스크 총 주식(2억2500만주)을 총 58억5000만달러(6조5000억원, 주당 26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샌디스크는 지난 52주간 최고가 기준으로 희망가격을 제시했다. 삼성전자가 '리먼 브라더스 사태'에 따른 불황기에 회사 가치를 저평가하고 있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협상은 무산됐고 표류하던 샌디스크는 2016년 웨스턴디지털에 인수됐다. 웨스턴디지털의 샌디스크 인수가격은 주당 86.50달러, 총 190억달러(당시 21조6000억원)였다.
삼성전자는 또 2016년 NXP 인수를 위한 협상에 나섰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당시 삼성전자의 제안 가격은 30조원쯤으로 알려졌다. 현재 NXP의 몸값은 60조원 정도로 거론된다.
삼성전자는 2017년 3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주도로 하만을 80억달러(당시 환율 기준 9조3400억원)에 인수했다. 이후 8년째 대형 M&A 시계가 멈췄다. 최근 수년간 기업설명회(IR)와 간담회 등 공식석상에서 삼성 경영진은 ‘유의미한 M&A’를 여러차례 언급했지만 현재까지 뚜렷한 성과는 없다.
재계 한 관계자는 “과거 잇따른 실패로 남은 트라우마가 삼성의 과감한 M&A 결단을 막아서고 있다”며 “삼성 경영진은 실패하면 안 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하고, 대형 M&A 추진에 속도를 낼 수 있는 전담 조직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출처 : IT조선(https://i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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